토요일, 11월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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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종단여행

4부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CH) 옆으로는 나지막한 산위에 나무들도 자그마하다. 저녁엔 무스(Moose)가 갑자기 튀어 나와 사고가 많이 나니, 밤늦게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엊저녁 코아에서 알려 주었기에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쉬기로 하고 떠났지만, 디어 레이크를 지날 때는 장대비가 쏟아져 정말 가늠을 할 수 없는 날씨에 그랜드 힐에서 모텔을 잡고 쉬었다. TV에서는’마이클 잭슨이 사망했다’ 는 비보가 계속 흘러나와 한때 아이돌(우상)이었던 잭슨을 회상했다. 이런 말이 있단다.”뉴펀들랜드에서 볼 것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 볼 것이 없는 것”이 볼 것 이라고들 한단다. 아직까지는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했다. 22일 여행길에 처음으로 모텔에서 잤다. 밤도 늦고 비도 오고해서…

 

[2009년 6월27일. 토] 시그날 힐(Signal Hill)의 하늘 정원을 걸으며…

 

아침 7시30분에 각기 나눠준 머핀과 과일을 먹으며 뉴펀들랜드의 주도 세인 죤스를 향해 달렸다. 가는 비가 내리고 현재 기온 섭씨 7도 밖에 안 되어 으스스하다. 바다와 호수를 끼고 가려니 해무가 비처럼 내리고 뿌옇게 흐려져 운전하기가 어렵고, 여기도 군데군데 공사를 하느라 임시 신호등을 만들어 시간은 좀 지체 되었으나 시그날 힐(Signal Hill)에 무사히 도착했다. 1497년 죤 카보트(John Cabot)에 의해 발견 되었으며 ‘새롭게 발견한 땅’이라는 이름을 가진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사실 어제, 페리에서 내려 500Km가 넘도록 빗속을 운전만 하여 1호차 손님들이 내일이면 떠나는데… 실망 될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시그날 힐에 도착하자 그것이 기우였으며 왜 많은 사람들이 뉴펀들랜드를 찾아오는지 알 것 같았다. 시그날 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의 전경은 유럽 사진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이 예뻤으며, 탁 트인 시야와 배가 이곳을 통해야만 들어 올수 있다는 미로 같은 항구. 항구에는 빨강 터그보트들이 떠 있었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기름을 올리는 유조선에 필요한 물건들을 날라다 주는 것이라고 몇 십 년 전에 이곳에 들렀던 1호차 추장님이 설명했다. 우린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옆에 있어 참 편리하다.

 

타이타닉이 빙산(Iceburgs)으로 인해 침몰 된 곳이 이 부근 이어서 총 대책 본부가 이곳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진짜 빙산을 보려면 5~6월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본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얼음덩이가 가장 많이 떠내려 온 것은 1983년에 2200개 정도의 얼음덩이가 떠 있었다니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이 가히 짐작이 간다. 한때는 아랍에서 이것을 수입해 가기로 결정한 적도 있었으나, 갑작스런 왕의 죽음으로 무산된 적도 있다는 ‘이 선달’의 일화도 있다.

 

이것을 끌고 가려면 빙산의 중간에 체인을 박아 3대의 배가 끌고 가면 가는 동안 1/3 정도가 녹는다고 한다. 빙산을 한번 실제로 보고 갔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캐나다 인구의 1%도 못 와 본다는 이 뉴펀들랜드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지구를 얻은 듯 감격 그 자체였다. 시그날 힐 전망대에 올라가니 꼭대기 방에는 수많은 깃발들이 말려져 진열 되어 있었는데, ‘어떤 깃발을 올리느냐’에 따라 배들이 그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안다고 한다. 그 안에는 또한 무전기를 발명한 말코니 스테이션(Marconi Station)이 있었다. 1890 년대 말코니가 이곳에서 영국과 무전으로 교신을 성공 시켰다는데 지금은 무선 전신이 발달해 무용지물이 되어 놓여있었다.

 

시그날 힐을 중심으로 트레일(Trail)을 만들어 시내 하버까지 걸어 들어 갈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주위의 경치들이 마치 하늘위의 정원을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잘 모른단다.

 

운동도 할 겸 우리 일행은 이 하늘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이름모를 노랑꽃들이 바위틈을 비집고 앙증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고, 작은 나무들도 제자리를 찾아 앉은 듯, 자연적인데도 꼭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정원 같았다.

 

깎아지른 절벽 오솔길을 스릴 있게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하버에 접어들고 골목길에는 아이리쉬 벽화가 그려져 있어 각자의 포즈로 한 컷씩 찍고. 또 걷고… 하버를 지나 도시에 들어서니 위에서 내려다 볼 때보다 도시는 노후 되었고 (북미 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함) 반나절이면 다 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럽과도 가까워 유럽에서 비행기가 떠서 문제가 생기면 이곳에 내려서 점검을 하고 간다는 뉴펀들랜드… 1949년 전까지는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다고 한다. 1949년에 연방정부로 들어가면서 퀘벡주에 속해 있던 ‘Labrador’을 받아 어획, 삼림, 자원 등을 갖고 공식 명칭을 ‘The Province of Newfoundland Labrador’라고 하였다.

 

엿새 동안의 중간 순례길을 마치고 내일 떠나는 밴쿠버 팀들이 바닷가재와 머슬 스노우 크랩으로 우리 순례자들에게 영양을 보충 시켜주고, 거기다가 남은 순례길에 보태 쓰라고 촌지까지… 아! 행복.

 

[2009년 6월 28일. 일] 아이스버그(Iceberg)를 직접 보다.

 

새벽에 1호차 추장님은 손님들을 공항에 내려놓고, 7시도 안되어 우리가 묵고 있는 피피파크( PiPPy park)로 오셨다. 이 파크는 뉴펀들랜드 한 복판에 있는 것인데 2호차와 3호차 두 집이 $10만 내고 잤다. L목사님이 주신 라면이 아직도 남아 맛있게 끓여 먹고, 어쩌면 빙산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신 추장님의 뒤를 따라 트윌린게이트(Twillingate)로 향했다. 날씨는 15도 하늘이 높은걸 보니 좋을 것 같다 .웬일인지 3호차의 워키토키가 불통이다. 배터리가 가셨나? 1호차와 2호차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가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겠지만, 그래도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길 잃고 헤맬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갠더(Gander)에서 330으로 다시감보(Gambo)에서 320 다시 340 보이드 코브(Boyd’s Cove)로 들어가 트윌린게이트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니 빙산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지금시각 오후 3시20분. 8시간을 달려 온 보람이 있다. 박물관이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간 순간! 저 멀리 바다위에 시퍼런 빌딩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희다 못해 시퍼런 빛을 띠고 빌딩의 가운데가 부러져 두 토막이 나서 누워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는 빙산이 부서진 흰 파편들이 즐비하게 떠 있었다. 우리 앞에는 마치 돌고래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은 빙산이 있어 사진을 찍느라 법석을 떨었다.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이 신기한 빙산을 보며 같이 기뻐했을 텐데… 떠나보낸 중간 순례자들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내려와 캠프장을 정하고 2개의 휘시마켓을 들러 바닷가재. 스노우 크랩 등을 사가지고 저녁을 해 먹고 다시 빙산을 보기 위해 드라이브를 해 지나는 길에 비취 가에 거의 다다른 빙산 조각을 사람들이 밧줄과 도끼를 가지고 건지려는 것을 보고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빙산을 녹여 마시면 피부에도 좋고 스카치에 띄워 마셔도 좋다고 한다. 기다렸다 한 조각 얻고 싶었지만 우리가 다른 구경을 하고 와 보니 벌써 건져 가고 없었다. 다른 편 비취에 갔더니 바위틈에 빙산 조각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건질 만큼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닌데… 말로만 듣던 빙산을 보고, 잘하면 ‘빙산을 만져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고 차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들고 바다로 돌격!!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약이 오른 3호차 늑영이 옷 입은 채로 뛰어 들어가고… 6명이 힘을 합해 제법 큰 덩이를 건져 갖고 캠프장으로 온 우리는 ‘스카치 온더 록’을 해서 마시고 아이스박스 위에 얹어 놓고 기념사진을 찍어대고. 녹은 물을 서로 마시겠다고 하다가 하는 말.

 

“너무 많이 마셔서 내일 아침에 모두 어린아이로 변하는 거 아냐?…”

 

역시 아이스버그의 캐피탈 도시(Iceberg Capital of the World) 임을 실감 하면서 자기 전까지 빙산수를 마셔댔다.

 

[2009년 6월 29일. 월] 빙산의 도시 트윌린게이트.

 

마지막으로 바닷가재를 먹고 가자고 주문해 놓고, 빙산을 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어제와는 반대편 산으로 갔다. 차 창문을 여니 얼음 녹은 시원한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하루 사이에 어제 벌어졌던 빙산 빌딩의 간격이 좁아 졌고, 앞에 돌고래 모양의 조각도 많이 작아 졌다. 원래 5~6월에만 볼 수 있다는 빙산을 6월의 마지막에 가까이서 본 행운아들.

 

몇 만 년된 빙산이 깨져서 떠내려 와 바다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거대한 덩치 위에 새가 되어 날아가 앉아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은 긴 여행 중에 꼭 덤으로 받은 선물 같은 기분이다.

 

26도의 좋은 날씨라 밖의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데, 반갑게 인사하는 부부가 있다. 밴쿠버 리치몬드에서 왔다는 중년부부는 우리 자동차 플레이트를 보고 너무 반가워 인사를 했고, 그분들은 비행기로 세인 죤스까지 와서 자동차를 빌려 다니는 길이라고 자동차로 여행하는 우리를 부러워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록키 하버(Rocky Harbour)이다.

 

첫날 페리에서 내려 이곳을 지날 때는 변화무쌍 하던 날씨가 오늘은 평온하니 주위마저 새롭게 보인다. 서북쪽 끝에 있는 그로스 몬 프로빈셜 파크에 도착하니 1인당 $19.50을 주고 데이패스를 사야 구경도 하고 캠프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캠프장 값은 또 따로 내야 한다고 하여 포기하고 나와 내일 페리 탈 가까운 곳 파사데나 비취 근방 캠프장에서 $26.00 내고 잤다. 모처럼만에 플루트를 불었다.

 

[2009년 6월30일. 화] 페리를 타고 다시 육지로…

 

6월 초에 집을 떠났는데 어느덧 6월의 마지막 날이다. 4박5일 뉴펀들랜드 순례를 마치고 오후 4시 페리를 타기위해 우리는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기온은 23도이나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춥다. 모두들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치칠리스 순례자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코발트 빛깔의 호수와 언덕위의 조그만 집들이 무척 평화스러워 보였다. 어디를 가나 물과 숲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캐나다는 참 축복 받은 나라라고 느껴졌다.

 

포로바스크(Port Aux Basques)에 다다랐을 땐 어찌나 심하게 바람이 불던지… 4시 30분 페리를 탔다. 페리는 깨끗하고 내일 캐나다 데이 행사를 위함인지 식당도 단장을 해 놓았다. 1시간쯤 항해해 나갔을 때 갑자기 멀미가 나기 시작 하더니 드디어는 점심에 먹은 칠리(Chili)를 다 토하고 어지러워 꼼짝을 못했다. 젊을 땐 통통배를 타고 다녔어도 끄떡없었었는데…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가 난다. 옆을 보니 3호차 늑영도 이불을 쓰고 아예 잠을 자고 있었다. 1m 정도의 파도는 계속되고,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는지… 다행히도 6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파도와 바람에 덕분에 4시간 만에 노스 시드니에 도착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그날 밤은 다시 코아에서 묵었다.

 

[2009년 7월 1일. 수] 캐나다 데이를 아케디언(Acadian)들과 함께.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한다는 케이프 브레톤 아이랜드(Cape Breton Island) 내셔날 파크에서 아케디언들이 주관하는 캐나다 데이 행사가 있단다. 아케디언은 불란서인들과 빅 멕(Big Mag)이라는 캐나다 원주민과의 혼혈들의 후예라고 한다. 캐나다 데이라고 공원 입장료도 무료다. 공원이라기보다는 산 같은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기도 하고 가는 도중에 있는 전망대는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바다 전경이 장관이었다. 씨닉 드라이브 길 한 편엔 슈가 트리(Sugar Tree) 보호 지역으로 97%가 슈가 트리라고 쓰여 있었다. 계속 남쪽으로 달려가는 양 옆으론 검푸른 숲을 이룬 나무들이 가을에 단풍이 들면 정말 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행사를 한다는 파크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조금 못 되어서다. 행사가 2시부터라니 상추쌈밥으로 점심을 먹고 기다렸다. 1시 30분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케디언들은 인디언 쪽에 가까운 이들도 있었고 불란서 쪽에 가까운 이들도 있었다.

 

2시가 되자 국기 게양대 앞에 모두 모여 오 캐나다 국가와 아케디언 국가를 부르면서 국기를 올리는데 사회 보는 사람이 34년 만에 처음 아케디언 국기를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어떤 이들은 눈시울을 적시고 또 어떤 이들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왜 34년 만에 아케디언 깃발을 올려야 했느냐”는 질문엔 무슨 사연인지 대답을 회피했다. 이들은 장소를 옮겨 기념 음악회도 하고 케이크와 종이로 만든 깃발을 기념으로 주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이 아카디언들은 불어에 가까운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케디언들의 고장을 더 둘러보고, 역시 아케디언이 일하는 캠프장에서 비취 가를 걷다가 잤다.-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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