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9월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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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종단여행

3부

[2009년 6월18일. 목 ]

 

벌써 집을 떠나 온지도 2주가 넘었다. 그런데도 엊그제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새롭고 재미있어 그렇겠지… 인터넷이 오피스 앞에서만 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과 아삽 게시판에 문안과 사진 몇 장 올리고 메인(Maine)주로 떠났다.

 

글로스터(Glouceter) 바닷가 휘셔맨스 동상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한방 찍고, 옆에는 고기잡이 나간 아빠를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들 동상도 있었다. 바닷가를 드라이브 하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등대를 지나며 ‘등대지기’ 노래도 부르고 모비 딕보다도 더 전통적인 고래가 유명하다는 추장님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덧 뉴햄프셔 주에 도착하였다. 큰 바위 얼굴(Oldman Face)로 유명한 이곳이지만 지금은 부서져 볼 수가 없다고 하여 안타까웠다. 그러나 자동차 플레이트에는 아직 큰 바위 얼굴이 그려져 있고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 Live Free or Die)고 써 있는 것이 이색적 이었다. 점심을 먹고 메인 주에 들어섰다.

오금큇비취(Ogumquit Beach)는 꼭 큐바 모래같이 곱고 깨끗했으며 물이 아직은 차가운데도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예쁜 시골 거리는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직은 한산했다. 사코(Saco)에 있는 빨강 사과 캠프장에 들어갔다. 시설이 호텔 못지않게 편리하고 좋았다. 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밤새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2009년 6월 19일. 금]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을 누비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간밤 빗소리에 잠을 설친 사람은 기분이 별로 인 것 같다. 소시지, 에그, 토스트, 과일로 아침을 먹고 1호차 추장님 차에 이상이 있는지 며칠 전부터 불이 들어와 혼다 딜러에 예약을 했다. 가는 김에 우리 두 차도 아예 오일을 갈자고 했다. 딜러에서 1시간 이상 걸린다고 몰에 데려다 주었는데 장대비는 퍼붓고, 관광객도 없는 한산한 몰에서 3호차 딸내미가 ‘같이 식사들 하라’고 준 돈으로 바닷가재 클럽 하우스와 롭스터 차우더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비는 하루 종일 앞이 안보일정도로 내리고, 빗속으로 우리를 바 하버(Bar Harbour)까지 인도해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개스 값도 오르기 시작해 갈론 당 $2.89 이다. 전에는 $2.35 정도이었는데… 그나저나 어쩌면 이렇게도 줄기차게 비가 오는지 …

 

그래도 우리는 ‘비를 즐기며 감사하자’고 했다. 아카디아라는 캠프장에 도착 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대로 일찍 잘 수밖에 없었다.

 

[2009년 6월20일 .토] 바 하버를 지나 캐나다 땅을 딛다.

 

아침이 되니 퍼붓던 비는 가는 실비로 변해 그런대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지나는 큰길가에 밖에 굴뚝을 높이 만들어 놓고 바닷가재를 삶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대로는 못 지나갈 것 같아 안에 들어가 보니, 엄청 큰 바닷가재가 탱크에 가득했다. “여기서 한번 먹자”고 의견 통일을 본 우리는 젤 큰 걸로 4마리를 파운드당 $9.50씩 주고 사서 정말 맛있게 뜯고, 바닷가재를 들고 염장사진(아삽밴드의 낭만이 우리가 떠날 때 ‘염장 지르는 사진 올려 주세요.’ 라 했다)도 찍고… 엊저녁 바닷가재 꿈을 꾸었더니 아침에는 캠프장도 반값 ($30)으로 깎아 주고 점심은 바닷가재로 배를 불리고… 그러나 바닷가재 덕분에 그동안 아꼈던 쌈지 돈이 한꺼번에 쑤우욱 나갔다.

 

대서양의 제일 북쪽( 미국에서)에 있는 바 하버는 정말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이맘때면 관광객들이 북적북적 댄다는데, 비가오고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텅텅 빈 가게에 주인만 손님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국경을 지나는 차량 행렬이 대단하여 1시간 이상을 기다려 우리는 ‘오 캐나다’를 부르며 집 떠난 지 16일 만에 내 나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아트란틱(Atlantic) 시간으로 바뀌어 밴쿠버 시간보다 4시간이나 빨라졌다.

 

뉴 브론즈윅(New Brunswick) 세인 존을 향해 가다가 뉴 리버 미취 프로빈셜 파크에서 $24.99을 내고 쉬었다. 그동안은 밤에 트럼프로 ‘나란히 나란히’ 게임을 해서 지는 사람이 다음날 커피를 샀었는데, 이제부터는 미세스 A가 잘 다녀오라는 카드 속에 1인당 $20 씩을 계산해 넣어 주며,” 어디까지 마시며 오나” 재미로 알아보자고 했기 때문에 커피 내기는 필요가 없어졌다. 이젠 뭐 내길 할까?…

 

[2009년 6월21일. 일] Father’s Day !(아버지 날)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우리 일행은 캠프장에서 나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얻은 약도로 제일 가까운 세인트 마크 연합교회(서양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로서리를 보고 호프웰 케이프를 향해 달렸다. 날씨는 그럭저럭 맑아지는 것 같다. 하이웨이 양옆에는 루핀(lupin) 꽃이 무리를 지어 예쁘게 피어있다. 오후 2시쯤부터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비와 인연이 많은가 보다. 베이 오브 훤디(Bay of Fundy)라고 쓴 팻말이 보이는 어촌 길을 달리며 온통 붉은 황토 빛 길이 이채로웠다. 호프웰 록은 아무래도 이틀 후 밴쿠버에서 귀빈들이 오기로 하였으니 같이 보기로 하고 멍톤시티(Moncton City)를 거쳐 노바스코시아로 갔다.

 

오늘은 파더스 데이!

 

아침에 슈퍼마켓에서 산 홍합과 삼겹살에 소주로 기사님들은 기쁘게 해 주고 모닥불 앞에서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하는 기도 노래를 부르며 정담을 나누다 잤다.

 

[2009년 6월 22일. 월] 할리팍스 시타델(Citadel)과 페기스 코브(Peggs Cove)

 

내일 PEI에서 손님을 맞으려면 오늘 하루 여기서 더 자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우리 일행은 차한대로 할리팍스(Halifax) 구경을 하기로 했다. 할리팍스 다운타운 부둣가에 가니 천만불짜리 유람선이 정박되어 있었다. 최신 시설을 다 동원해 미시시피에서 만들었다고 쓰여 있는데 정말 우람하고도 여간한 집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11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12시 정각에 대포 쏘는 것을 보기위해 할리 팍스 시타델(Citadel)로 향했다. 별 모양으로 된 할리팍스의 요새. 언덕 꼭대기에 있는 이 요새는 영국군이 1856년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대영 제국 해군의 주요 작전 지역이었다. 12시가 가까워 오자 백파이프와 드럼이 울려 퍼지고 옛날 제복을 입은 포병들이 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안내하는 병사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40파운드의 화약을 넣고 쐈는데 만약에 지금 그렇게 하면 할리팍스 시내에 있는 유리창들이 다 깨져 그것을 물어 줄 돈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넣고 쏜다고 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할리팍스의 항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더 머물며 보고 싶었지만 기억 속에 찍어 가기로 하고 박물관과 백파이프 공연을 듣고 1시간 거리인 페기스 코브(Peggs Cove)로 향했다. 커다랗다 못해 우람한 암반 위에 등대가 우뚝 서 있고 옆으로는 식당과 선물가게가 있었다. 하나의 암반으로 된 덩어리가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고 거센 파도에 시달렸건만 전혀 동요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방학도 아니고 날씨도 흐린데,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대서양의 물결을 바라보며 가슴을 펴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바위를 치고 나가는 파도 뒤에는 미역인가 다시마 줄기가 둥 둥 떠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바람이 그리 세지 않았는데, 우리가 떠나고 며칠 후 바람이 세게 불어 바다에 빠진 여자를 구사일생으로 구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거기서 십분 거리에는 1998년 9월2일 스위스 에어 111의 229명을 삼켜버린 위령비가 놓여 있었다. 유족들이 갖다 놓은 꽃과 인형들이 외로이 앉아 영혼들을 추모해 주었다. 모처럼 같은 캠프장에서 이틀을 묵으니 여유도 생기고 장작불을 피워 놓고 소시지, 머쉬멜로우, 팝콘까지 튀겨 먹으니 여기가 천국이었다.

 

[2009년 6월 23일. 화] 밴쿠버의 반가운 손님맞이.

 

새벽이슬을 머금고 싱그럽게 살아 있는 작은 잎새와, 앞개울에 흐르는 맑은 물이 어찌 그리 정겨운지… 손을 담가보니 그리 차지도 않다. 자연의 조화가 놀랍다.

 

오늘은 멀리 밴쿠버에서 3명의 손님들이 PEI로 오는 날이라 1호차 추장님 내외는 차 안팎을 깨끗이 단장하고 짐을 나눠 싣고 PEI를 향해 떠났다.

 

30분쯤 가다 1호차에서 개스를 넣으라는 불이 들어 왔단다. 2호차는 아직은 괜찮은데, 25Km를 더 가야 개스 스테이션이 나온다는 사인이 보인다. 할 수 없지 뭐. 가다가 서면 밀고 가는 것도 추억일 테니까… 경제속도로 달려 겨우 개스 스테이션에 도착 했을 때는 모두다 “휴우”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날씨는 좋고 18도의 알맞은 날씨에 우리는 겨울에 얼음이 어는 바다 위에 놓은 다리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13Km) PEI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 다리를 건너며 신기해했다. 지나는 길에 휘시마켓에서 바닷가재를 사서 빅토리아 파크에서 맛있게 쪄서먹기 전에 염장사진 한방 더 ‘짤칵’ … PEI는 감자가 주 농산물인데 넓은 평야가 전부 빨간 흙이다. 예전에는 감자에 무슨 병이 있다하여 미국이나 다른 주에 수출을 못 했었다는데, 요즘은 토론토로 많이 보낸다고 한다. 이쪽 동부에는 가는 곳마다 루핀이 무리를 지어 예쁘게 피어 있는 게 특색이다.

 

19번 도로로 가다 록키 포인트에 들러 구경하고, 일찌감치 코아에 짐을 풀고, 손님들이 묵을 모텔은 5분 거리에 정해 놓았다. 귀빈들이 오시는데 저녁 메뉴를 뭐로 할까? 3호차 주방장은 맘이 분주하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서 손님들을 태운 1호차가 캠프장에 도착했다. 서로 얼싸안고 “와 이리 반갑노.” ” 보구 싶었데이.” 이럴 땐 꼭 사투리를 써야 감칠맛이 나는가보다. 새벽에 떠나 이제야 도착한 손님들은 미리 준비 해 놓은 카레라이스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나중에 들어 보니 그중 한사람은 여태껏 카레라이스를 안 먹었단다. 카레를 보는 순간 남편이 귓속말로 “여보 어쩌지” 하니 부인이 “아무 소리 말어. 그럼 나 굶잖아…….” 이리하여 부인은 이때부터 카레를 먹기 시작 했단다.)

 

긴 여행에 그리워 할 김치찌개, 장조림, 장아찌, 미역국, 북어조림 등 마른 오징어와 쥐포까지 박스로 실어 온 손 큰 여인. 남은 기간동안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미역과 구운 김을 가방에 가득 실어온 귀여운 부부. 순식간에 부자가 된 우리 일행은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하고 감사했다.

 

이때 우리들의 모습이 오죽 했으면 P씨가 지어준 별명이 ‘찌질스럽다’에서 나온 ‘찌질’과 인디언족들이 잘 쓰는 ‘리스’를 붙여 영어로 하니 “치칠리스’가 된 것이다.

 

1호차 추장님은 떠나면서부터 깎지 않고 기른 수염이 제법 길고, 2호차 게바라는 열흘 뒤부터 길렀어도 워낙 숫도 많고 검어서 비슷하고, 3호차 늑영은 간간이 깎았는지 아직 반반하다.

 

[2009년 6월24일. 수] 빨강머리 앤의 마을에…

 

아침에 9식구가 북적이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간단하게 양식으로 먹고, 손님들은 오후엔 우리가 지나온 할리팍스에 가야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둘러 빨강 머리 앤(Village of Green Gables )을 보러 케빈디쉬로 향했다.

 

그곳에는 빨강머리 앤을 쓴 작가 L M Montgomerry(몽고메리)의 생애와 글을 쓰던 집을 옮겨 놓았고, 가상의 인물이었던 앤과 길벗이 간단한 연극도 보여주고, 다니면서 관광객들과 이야기도 하며 한나절을 보내기엔 아주 좋은 곳이었다.

 

공원에 가서 제2차 모기들과의 전쟁을 치르며 주방장표 샌드위치를 싸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1호차는 손님들과 떠나고, 2호차와 3호차는 모레 뉴펀들랜드에 가기위해 104 E를 타고 노바스코시아에 있는 노스 시드니로 향했다.

 

오후에는 비가 간발 적으로 쏟아지고 씨닉 드라이브로 달리고 달려 저녁 8시 반에 노스 시드니의 코아에 도착했다.

 

[2009년 6월25일. 목] 노스 시드니에서…

 

1호차는 오늘 밤 늦게야 도착 할 터이니, 두 집만 시드니 관광을 하기로 했다. 내일 타고 갈 페리 터미널에도 가 보고 푸핀(Puppin)이라는 새의 섬에도 갈까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그만두고 베덱(Beddeck)에 가서 고깃배와 바다구경도 하고 “Telephone Pioneers at America” 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그레함 벨센터에 가서 그의 유적을 보고, 하이킹도 조금 한 다음 코아로 돌아와 밀린 빨래와 인터넷을 하고 모처럼만에 조용히 쉬었다.

 

1호차 일행들은 밤 10시가 다 되어 돌아와 페리 터미널 앞 B&B에서 잤다.

 

[2009년 6월26일. 금] 그리던 뉴펀들랜드(New Foundland)에 도착하다.

 

아침 8시 페리인데 2시간 전에 도착하라 하여 새벽 5시에 일어나 서둘러 갔는데, 정시가 되어도 떠날 생각은커녕 배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도 안한다. 30분이나 늦게 출발한 페리는 오후 2시가 넘어야 도착할 것 같았다. 페리도 우리가 생각했던 빅토리아를 오가는 것 보다 노후하고 작은 것 같았지만 캐나다의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미지의 섬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설레었다.

 

밖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 갑판에 나가도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물결은 잔잔하여 멀미 걱정은 없었다. 처음엔 시끌벅적 흥분된 9명 이었지만, 6시간을 바다 물살을 가르고 가야하는 우리 일행은, 지도공부 하는 사람. 책보는 사람. 트럼프 하는 사람. 창밖을 쳐다보는 사람. 엊저녁 설친 잠을 보충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조용했다.

 

오후 2시30분! 경적 소리와 함께 우리는 대망의 뉴펀들랜드에 도착했다. 기온은 19도 알맞은 날씨에 바람이 약간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와 정보를 얻고, 세인 죤스까지는 오늘 갈 수 없으므로 중간에서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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