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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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의 음악세계 18회

쓴소리 단소리 (7)

지난 칼럼에서 연주자관점에서 보는 밴쿠버가 가진 환경적 장점을 다뤄봤다. 다양성이 확보되어 있다는 점, “인프라”라고 하는 외적환경이 좋다는 점, 마지막으로 관객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 이렇게 크게 3가지를 언급했다. 이번 칼럼은 밴쿠버가 가진 단점을 연주자관점에서 다뤄본다.
 
1.불투명한 목적을 가진 과정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

필자가 밴쿠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중 하나가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편으로 동의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동의하지 않는다. 밴쿠버 연주자들은 일반적으로 음악을 하는 자체만을 매우 즐기는 듯 하다.  뚜렷한 목적과 결과를 가지고 하기 보단 그저 모여서 같이 연주하고 즐기는 것에만 커다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그들의 비판을 수궁한다. 필자는 목적이 구체적이지 않는 말과 행동에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으며 그러한 언행은 그저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느것이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이 없는 음악학기의 과정은 아마추어수준에서는 쉽게 이해할수 있으나 과연 전문적인 수준에서도 쉽게 용인될수 있는 문제인지는 우리가 고민해봐야한다. 먼저 목적이 없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쉽게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여행하는 목적과 하고자 하는 지역이 있지 않는 상황에서 여행방법과 과정이 나올수 있을까. 여행지와 여행목적이 없는데 여행과정을 즐길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특히, 초보자가 아닌 전문수준에서 보면 더 더욱 그렇다. 
음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뚜렷한 목적과 어떤 결과에 대한 고민없이 즉 “무엇”(what)과 “왜”(why)라는 기본설정없이 “어떻게”(how)를 찾고 즐긴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고 이상한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밴쿠버내 제법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이 하는 음악에 뚜렷한 목적없는 그러니까 정체가 없는 과정에만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크다. 과정은 결국 목적과 결과를 이루기위해 필요한 것이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에요” 또는 “저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해요”라는 말은 맞지 않다. 좋은 결과를 위해 좋은 과정이 필요하고 또 좋은 과정을 위해선 뚜렷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둘이 같이 가는 것이다.

2. 아마추어적인 자세와 태도

뒤돌아보닌 어느덧 음악을 20년 넘게 했다. 꽤 오랜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나 스스로 “Professional Musician”이라고 말하기엔 스스로 손발이 오그라들정도로 민망하다. 아마도 평생 그런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예전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밴쿠버에는 자칭 “프로”가 굉장히 많아 보인다. 전세계 어느지역을 가도 스스로 프로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렇게 많이 볼 수 없을듯 하다. 이상한 현상이다. 프로라는 말은 자기 자신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또는 대중으로부터 평가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받기위해서는 실력은 물론 태도, 자세 그리고 인격 등 여러 다방면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밴쿠버에서 진정으로 프로다운 연주자를 본적이 손가락으로 셀정도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음악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그리고 열정이라는 면에서 보면 낙제점에 가깝고 음악을 떠나 인격적으로 볼때도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바닥이 워낙 좁아서 일까. 2-3년 바짝하면 제법 이 도시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럴법도 하다. 그러나, 그순간 성장이 멈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아마추어수준에서 스스로 프로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아마추어답지 않다. 세상은 무척 넓고 깊은데 이런 생각을 쉽게 한다는 것이 매우 안타갑다.
 
3. 배움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 부족

필자는 개인적으로 보스톤과 뉴욕이라는 도시를 매우 좋아한다. 먼저 보스톤은 도시전체가 “배움”이라는 것에 굉장히 열정적이다. 배움은 먼저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도시구성원이 낮은 자세를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한다. 늘 긍정적이고 어느 상황이 와도 불평보다는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 음악역시 비슷하다. 워낙 기라성같은 연주자들이 도시 전체에 즐비해도 그들은 늘 배우려하고 끊임없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려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중에 큰 인물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뉴욕은 늘 새로운 것을 지양하고 실험정신이 강하다. 늘 새로운 것을 위해 노력하고 실험하는 모습은 음악을 비롯 모든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창의적이지 않고 과거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것은 예술이 아니라 그저 복사하는 것이다. 또, 어느 누구도 기술만 있으면 쉽게 할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실험정신이 강한 뉴욕의 예술환경은 그 도시가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가 될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과 밑거름중 하나이다.
    그럼, 밴쿠버는 어떨까. 밴쿠버가 수준높은 예술도시라고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주장이기에 존중하고 귀기우려 듣지만 과연 왜 수준이 높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본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것 또한 스스로 평가받은 것이 아니라 남들로 부터 냉정히 평가받는 것이다.) 실험정신은 물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낮은자세로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이곳 연주자들에게 찾아보기 힘들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2-3년 바짝하면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듣고 우쭐되고 그 미성숙한 모습을 꽤 오래 지니고 있는 이곳 연주자들을 봤을때마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운 생각한다. 물론, 밴쿠버를 보스톤이나 뉴욕같은 도시에 직접비교하기엔 다소 무리이다. 다만,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배움에 대한 열망과 예술가로서 보다 더 실험정신을 가지고 임하는 자세를 더 보고 싶다. 
      
4. 관객의 비판의식 부족

버클리음대 동문회에서 발행되는 잡지(소식지)가 매달 집에 온다. 3월달 잡지의 일면에  우리 서울시내의 경북궁사진이 실렸고 잡지의 주제는 서울의 수준 높은 음악환경이다. 필자는 과거 2003년까지 음악을 포함한 우리의 낮은 예술문화수준을 크게 비판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뒤바꿨다. 이제는 서구사회가 우리의 것을 배워야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난 10~15년간 우리의 음악및 예술문화수준이 높아진 가장 큰 원동력중 하나는 관객과 대중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관객의 비판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다행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연주자들에게 독과 같은 것이다. 밴쿠버의 관객이 무조건적으로 박수를 치고 호응하는 친절한 태도에는 무척 감사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우리 연주자는 늘 상기해야한다. 관객과 대중이 보다 더 날카롭고 비판적이여야 연주자들이 변하고 더 노력하지 않을까. 그러기위해서는 관객과 대중도 음악과 그외 다른 예술문화를 그저 앉아서 편안하게 즐기기만 하기보다 직접 행하고 그 내용속으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배우고 알아야한다.

마치며
   
지난 여러칼럼을 통해 밴쿠버라는 도시가 가진 장단점을 학생, 교육자, 그리고 연주자입장에서 다뤄봤다. 사실 주제넘는 일이고 스스로 매우 부끄럽다. 처음에도 말했듯 짧은 음악생활을 캐나다, 미국, 한국,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그저 개인적으로 다뤘을 뿐이다. 물론,  칼럼을 통해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계셨을것이고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셨을 것이다. 또, 동의와 동의하지 않는 범위와 깊이 역시 개개인마다 다 달랐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지난 경험이 다르기에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다 당연하다. 철학자 니체가 이야기했듯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 (“There are no facts, but interpretations.”).” 지난 필자의 칼럼 내용은 그저 필자의 개인적인 시각과 해석에 불과하다. 
필자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밴쿠버에 대한 평가가 서로 너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시각은 다양할 수 있으나 너무 지나친 찬양 또는 반대로 지나친 비난은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나침은 늘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또 다시 니체의 말을 빌리면 “편견은 거짓보다 사실을 왜곡하는 더 큰 적이다 (“Convictions are more dangerous enemies of truth than lies.”).”
필자가 지난 여러칼럼을 통해 나만의 시각으로 보는 장단점을 균형있게 다룬 이유는 먼저 음악은 상황과 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나의 의견과 생각을 독자여러분들과 나누자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기회를 통해 우리가 보다 더 균형적으로 밴쿠버환경이 가진 음악적 장단점을 서로 토론하기 위함이고 마지막으론 궁극적으로 어떻게하면 장점은 승화시키고 단점은 보완할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밴쿠버의 장단점을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지만 앞으로 전문음악인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들과 함께 이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싶다. 혹시 나와 의견을 나누고 싶으신 분들이 계면 편안하게 이멜로 메시지를 주셨으면 한다. 보다 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과 여러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면 밴쿠버에서 음악하기(musicking)가 더 즐겁고 재밌지 않을까.    

글쓴이: 이상준, 칼럼니스트
이멜: jonleemusique@yahoo.com
홈페이지: www.jonleemusiq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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