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9월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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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의 음악세계 16회

쓴소리 단소리 (5)

 

             지난 2번의 칼럼을 통해 학생과 음악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밴쿠버가 가진 장점을 다뤘다. 학생입장에서는 첫째, 악기를 손쉽게 또 저렴한 가격에 구입 또는 대여가 가능하다는 점 둘째, 공교육내 음악교육이 아직은 살아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부 공연등 여러 음악활동의 기회가 있다는 점등이 있다. 교육자입장에서는 첫째, 음악수업을 위한 외적환경 즉 인프라(Infra-structure)가 잘 갖춰져있다는 점 둘째, 충분한 자료가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악을 배우고자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점등이 있다. 오늘은 아쉬운점에 대한 이야기해보자.

  1. 음악교습비에 거품이 많다.

             합리적인 가격의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일이다. 누구도 할수 없는 일이고 이것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시장내 모든 제품의 가격은 기본적 경제이론인 수요(demand)와 공급(supply)의 원칙으로 서로가 맞닿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지 않나싶다. 개인교습의 경우 실력이 있고 인기가 많은 선생님은 자연스레 교습비가 올라가고 그렇지 않는 경우는 레슨비가 상대적으로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듯 하다. 아마도 밴쿠버내 음악교습비 역시 이런 자연스런 원칙에 따라 교습비의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런 경제원리와 무관하게 밴쿠버내 음악개인교습비는 보다 더 많이 내려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30분에 30불 한시간에 50불이라는 돈은 보통사람들이 쉽게 지불할수 있는 액수가 결코 아니다. 어떤 경우는 시간당 60불 또는 100불을 지불해야할때도 있다. 다소 지나치다. 가격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경제원리로 정해진다해도 이것은 비합리적이다는게 필자의 생각이고 주장이다.

             물론 밴쿠버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 중 몇몇 분은 미국의 명문음대에서 수년간 비싼 학비와 레슨비로 자신의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올린 훌륭한 분들이다. 지난날에 그들이 투자한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액수가 아닐수도 있다. 아니 실력과 능력면에서 충분히 그만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필자 역시 남부럽지 않는 좋은 학교와 소위 ‘대가’라는 불리는 스승 밑에서 일반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고액의 학비와 레슨비를 수년간 지불하면서 음악을 배웠다. 그럼,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또다시 비싼 레슨비를 학생들에게 요구해야할까. (물론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존중한다.)

             다만, 화려한 학력과 음악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속 교습비를 올려받으면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의 레슨비 역시 동반상승하고 반대로 교습비를 내려받으면 같이 동반하락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하지 않을까. 벤츠가 자동차 가격의 거품을 빼고 30% 내리면 토요타나 혼다도 그만큼 가격을 내리지 않겠는가. 이유야 어찌됐든 광역밴쿠버시에서 레슨을 하고 있는 음대 재학생들이 $40 또는 그 이상을 받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수 없다. 너무 단정지어 말하는 것일수 있으나 필자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40 또는 그 이상의 수업을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레슨비가 지나치다고 비판을 하나 필자는 이 비판은 음대재학생뿐 아니라 더 비싼 고액레슨을 하고 있는 이른바 명문대출신의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음악선생님들 역시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여기서 레슨비에 대한 이런 저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 올바르지 않다. 다만, 음악이 점점 더 상류층의 소유물로 또 음악교육 역시 점점 양극화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분명 레슨비의 제한 또는 슬기로운 해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위에서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시장의 법칙을 이야기했으나 음악은 상품이기전에 음악이고 교육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이기전에 교육이기 때문이다. 음악, 교육, 학문, 언론, 정치 등등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브레이크없이 시장만능주의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

             누구나 즐기고 받아야할 음악과 교육이 돈과 경제적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분명 불행한 것이다. 모두가 양극화때문에 힘들어하는 요즘 소리의 즐거움이라는  ”音樂” 마저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 즐거움의 기회가 갈린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다.  밴쿠버내 값비싼 음악교습비 문제는 분명 음악내 책임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위해 더 신중히 논의하고 행동해야 할 부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1. 높지 않는 공교육내 음악교육의 질

             미세하지만 캐나다 공교육내 음악교육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분명 칭찬해야할 부분이다. 다만, 지난 10여년간 많은 사람들이 밴쿠버 공교육의 질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를 했듯이 필자 역시 학교내 음악교육의 질에 대한 몇가지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과연 초중고등하교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음악교육의 질은 과연 신뢰할수 있는 수준일까. 여러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지만 결코 높다고 할수 없는 수준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우리에게 잘알려진 것처럼 학급당 학생수가 너무 많다. 필자의 경우 한때 거의 60명의 학생들을 한반에서 가르쳤던 적이 있고 현재는 한 학급에 40~45명이 되는 반이 셋이나 된다. 주위 친구의 경우는 한학급에 70명까지 가르쳐봤다고 한다 (공교육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비판받는 미국도 필자는 한 학급에 30명이상 가르쳐본적이 없다.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28명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상하게 밴쿠버교육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학급당 학생수는 학생들의 학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물론 학생수가 지나치게 적은 것도 교육적으로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적당한 인원이 있을때 가장 효과적 학습이 이뤄진다. 법으로 정해진 28명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인원수이다.) 학급당 인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사는 더 기술과 힘에 의존해 학생들을 가르칠수 밖에 없다. 지나친 힘과 기술에 의한 지도방법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일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결코 좋은 교육방법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이 옳바로 성장할수 없다. 45명, 60명…그리고 70명…제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진 교사들도 힘과 기술없이 다룰수 없는 인원수이다.

             예전에도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듯 음악지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Knowledge-about-music이라고 하는 음악에 대한 지식과 Knowledge-in-music이라고 하는 음악속에 내재한 지식이다.  멜로디, 화성, 리듬은 물론 셈여림 그리고 속도등 문자 그대로 “음악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책을 읽을때 단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파악해 내용을 이해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음악속에 있는 지식”은 문자 또는 활자로 표현할수 없는 많은 사회문화적 내용과 음악지식을 말한다. 좋은 예로 부산사투리를 문자 또는 활자로 이해할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밴쿠버내 음악교육(공교육내)은 지나치게 활자 또는 문자 (독보)적이다. 책을 아무런 감정과 느낌없이 읽는 기계가 되기 위한 학습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매일이다. 물론 악보에 나와 있는 것에 정확히 읽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인간은 매우 복잡한 동물이고 음악 역시 작품이기 전에 사회문화적 행위와 여러 과정이 있다. 지나치게 기계적인 학습위주로 음악이 가진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 비판해야할 부분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에 대한 집착은 강한 반면 음악속에 내재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엔 너무 소흘하다.

             마지막으로 음악교육이 지나치게 결과위주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필자의 주장에 의아해할것이다. 캐나다가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음악의 경우는 반대이다. 이런 결과적 음악교육은 이른바 Music Education As Aesthetic Education(줄여서 MEAE)이라고 60~80년대식 낡은 음악교육방식이다. (필자를 포함한 이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바로 이 MEAE방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아왔다.) 변화에 대해 인색한 분위기 탓일까. 밴쿠버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MEAE식의 낡은 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90년대 이후 음악교육의 내용과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결과보다는 음악을 행함과 그 과정속에 담긴 다양한 철학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다양한 의미와 가치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춘 이른바 Praxialism이 미국은 물론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 크게 자리 잡혀가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교육의 흐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부인할수 없는 밴쿠버 공교육내 음악교육현주소이다.

 

-계속-

 

이상준

홈페이지: www.jonleemusique.com
이멜: jonleemusiqu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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