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9월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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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기초생활수급자** 전두환***’

글: 마태운/ 웹진 이프

 

*꽁트:손바닥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짤막한 단편소설이란 뜻의 프랑스말. 올바른 한국말 발음은 콩트.

**기초생활수급자:사회적 약자, 빈곤층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지원등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 전두환:‘대머리 군인’으로 알려졌던 대한민국 12대 대통령. 대구공고와 육사를 거쳐 육군소장 재임시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군사반란, 5•18 광주학살 책임자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 감형, 특별사면을 거쳐 풀려났다. 기업들로부터 갈취한 2000억여 원을 추징당하게 되자 ‘가진 전 재산이 29만여 원’이라고 말해 더 유명해졌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조건을 갖춘 빈곤 계층으로 전락함.

 

제1화

 

총동문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공고 운동장.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수많은 펼침막들이 운동장 한 쪽에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가장 화려한 펼침막 아래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한과와 주스잔, 맥주잔들이 쭈루루 놓여져 있고 그 앞에는 온갖 기념품들이 은박지로 포장돼 벽돌처럼 쌓여 있다. 펼침막 위로 큰 현수막이 걸려 있고 거기에 ‘한국 민주화의 초석, 전두환’이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다. 운동장에는 1백여명의 동문회원들이 군인들처럼 줄맞춰 나열한 채 서있다.

 

검은 양복의 단추가 터져나갈 것 같이 불룩 배가 나온 총동문회장이 개회사를 한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마이크 시험 중’이라고 말하며 동문회원들을 둘러볼 때는 굳어 있던 동문회장의 표정이 옆의 전두환 부부를 바라볼 때는 애교어린 미소를 짓는다. 그의 얼굴을 가린 갈색 선글래스가 눈부신 가을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마, 오늘날 우리들의 자랑스런 대공인(대구공고인)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 자리에 모시고 총동문회를 개최함에 있어, 북받쳐 오르는 감격과 영광의 마음을 가눌 길 없습니다.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긴 박정희 대통령이나 여기 계신 전두환 대통령 모두 우리 경상도가 낳은 위인 아니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진 뒤 사나운 폭풍우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던 이 나라를 구하신 게 누구였습니까? 민주네 뭐네 하며 오뉴월에 서리 내리는 것도 아니고, 되도 않는 소리를 내까리던 김대중이 같은 정치인들과 아직 국가안위가 뭔지, 나라의 기강이 뭔지도 모르는 철없는 대학생들이 때 만난 천둥벌거숭이처럼 나대면서 사회를 어지럽힐 때 단호하게 이들을 제압하고 나라의 갈 길을 바로잡으신 게 누구였습니까.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대공인의 영원한 귀감, 전두환 각하 아니겠습니까, 여러부우운!”

 

펼침막 앞 운동장에 학생 조회하듯 줄맞춰 서있던 동문회원들이 일제히 박수갈채를 터트릴 때 마이크를 잡은 동문회장의 목소리가 정말 감격에 겨운지 마지막 ‘여러분’을 외치면서 가늘게 떨려나오고 있었다. 식순에 의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이크 앞으로 나와 인사말을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을 때 동문회원들이 연호하는 ‘전두환! 전두환!’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존경하는 대구공고 동문 여러분, 항상 본인을 잊지 않고 이렇게 총동문회에 불러주시고, 골프모임에도 초청해주시고…본인이 이 나라의 대통령직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성원과 지지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가장 큰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라고 본인은 믿습니다. 자위권을 발동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던 광주폭도들을 진압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적 불순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사회를 정화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본인을 지지해주는 여러분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임제를 실천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동문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인은 믿습니다. 본인이 퇴임한 뒤 국가 기강이 많이 해이해져 최근 좌익세력들이 곳곳에서 준동하는 현실을 보면 우려를 넘어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우리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 오는 데 앞장 서온 여러 동문님들을 보게 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저와 함께 우리 동문들이 모두 힘을 합쳐 대한민국을 지키는 선봉이 됩시다.”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전두환으로부터 마이크를 돌려받는 동문회장의 허리가 90도 각도로 꺽였다.

 

“동문회장으로서 제가 즉석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편안히 살고 있는 게 모두 누구 덕입니까? 지난 날 각하의 위대한 영도력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각하 내외분께 큰 절 한 번 올리는 게 어떻습니까?”

 

운동장에 나열해 있던 동문들이 합창하듯 ‘좋습니다’를 외쳤다. 거의 검은색이나 짙은 감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설날 세배하듯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조폭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전두환 부부가 두꺼비처럼 납작 업드려 절하고 있는 수많은 대구공고 동문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제2화

 

전두환의 연희동 사저에 검은 그랜저 승용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차에서 내려 저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모두 5공 시절 한가락씩 하던 인물들이었다. 정기적으로 전두환 측근들이 찾아와 저녁식사를 하며 갖는 모임이었다. 널찍한 거실에 놓인 이탈리아제 고급 식탁과 의자에 전두환과 그 측근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기 전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있다.

“각하는 언제 뵈도 건강이 아주 좋으신 것 같아요. 비결이 뭡니까?”

“비결이랄 게 뭐 있나.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그게 건강이지. 그리고 이게 있잖나. 힘과 정력의 상징 아닌가.”

전두환이 자신의 대머리를 쓸어 넘기자 모두 웃음으로 화답했다.

“요즘 추징이니 뭐니 시끄럽던데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건강에 안 좋습니다.”

“거참, 내 이름을 딴 법도 만들어지는 모양이데. ‘전두환 추징법’이래나 머나. 이거 무슨 가문의 영광도 아니고. 참 딱한 사람들이야. 없는 돈을 어떻게 추징한다고 저 야단들인가. 정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라도 해야 내가 돈 없는 걸 믿을래나.”

 

모인 사람들이 껄껄 웃는 가운데 누군가 “아, 제발 그러십시오, 전직 대통령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했다는 뉴스 나가면 외국에서 뭐라 그러겠습니까?. 나라꼴 참 잘 돌아간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제서야 좀 창피한 줄 알겠네요”라고 거들었다. 전두환이 “어이, 비서관, 내일 당장 동사무소 가서 신청서류 좀 받아와”라고 하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아, 그리고 그 돈을 다 내가 썼나? 어려운 후배군인들, 어려운 정치인들 돕는데 다 썼지. 내가 손이 커서 쓰면 또 화끈하게 쓰지 않는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옛날에 어려울 때도 아마 한 6억쯤 줬었지. 이렇게 남들 도와줬으면 선행상을 못 줄망정 뭘 추징한다는 게야?”

 

전두환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배달시킨 중화요리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도 없으실텐데 음식값은 저희가 내겠습니다.”

“어허, 무슨 소리, 외상이란 게 있잖나, 내가 또 워낙 신용이 높은 사람 아닌가.”

모인 사람들이 정말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듯, 박수까지 쳐가며 웃어댔다. 전두환이 최고급 위스키 중 하나인 글렌피딕 50년산 병을 따서 각자 잔에 따르자 모두 잔을 치켜들고 건배사를 외쳤다.

“우리가 남이가!”

 

제3화

 

대구 재래시장 골목의 국밥집. 밤9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어서 손님은 중늙은 남자 2명뿐이다. 중년의 주인아줌마와 20대 여종업원은 식탁에 앉아 할 일없이 벽 선반에 올려놓은 TV만 쳐다보고 있다. 남자들은 산에라도 갔다 왔는지 등산복에 등산모를 쓰고 있고 선지국밥에 소주를 먹으며 역시 TV를 바라보고 있다.

 

TV 에선 전두환 자녀와 친인척, 측근들에게 흘러간 것으로 추정되는 1천6백억원의 추징 시효 연장을 위한 ‘전두환 추징법’ 국회 통과가 마지막 여야 합의만 남겨놓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국회를 들락날락 거리는 국회의원들 모습에 이어 전두환이 ‘5공청문회’에 불려나와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연설이나 하고 있던 옛날 자료 화면이 이어졌다.

 

“아이고, 마, 저 대머리 이제 꼴도 보기 싫다. 아야, 채널 좀 돌리버리래이. 증말 짜증난다 아이가.”

 

여종업원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순간, ‘탁’하며 숟가락으로 식탁 때리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등산복 남자들 중 하나가 주인아줌마를 노려보고 있었고 식탁을 때리고 튕겨 나온 숟가락이 등산화 옆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 등산복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저 아지매 말하는 꼴 좀 보소. 전직 대통령한테 대머리가 뭐꼬, 대머리가.”

숟가락 내동댕이치는 소리에 잠시 놀랐던 주인아줌마가 등산복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떴다.

“대머리를 대머리라 카지, 그럼 뭐라카는데? 그라고 와 죄 없는 숟가락은 내동댕이치노?”

등산복 남자가 열 받는다는 듯 양팔을 쫙 벌려 식탁을 움켜쥐고는 입술을 옹다문 채 고개를 좌우로 꼬았다 풀었다 한 뒤 얼라 타이르듯 말했다.

“대머리를 대머리라케서 내가 뭐라카는 게 아이고, 이 보소 아지매, 전직 대통령이잖아, 대통령! 국민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거 뭐냐, 예..예.. 그렇지, 예우라는 게 있지, 예우! 대머리라니, 무신 말을 그리 무식하게 하나?”

“뭐라꼬? 무식? 당신은 얼마나 유식한데? 그라고 저 대머리가 무신 대통령이고? 도둑넘이지. 수천억을 꿀꺽했으니 그냥 도둑넘도 아니제.”

“뭐, 뭐, 도둑넘? 전두환 대통령보고 도둑넘? 듣자듣자 하니 이 아지매가 미쳤나? 빨갱이보다 더 하네. 칵 저 주둥이를 뽀사버려야 정신 좀 들라나.”

“지금 주둥이를 뽀사버린다겠나? 낫살이나 처묵었으면 밥 잘 묵고 그딴 신소리 하지 말고 그만 조용히 집에 가서 뒤비져 자래이.”

 

등산복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주인아줌마를 노려보다 벌떡 일어서며 먹던 국밥을 내동댕이쳤다. 요란하게 뚝배기 깨지는 소리와 함께 콩나물이며 선지 등이 바닥에 널부러졌다.

“낫살이나 처묵어? 이 미친년이, 니 몇 살이고?”

 

그러는 니는 몇 살 처묵었는데? 어쩌구저쩌구 하며 둘이 싸우는 동안에도 등산복이 계속 반찬그릇이며 술잔 등을 바닥에 내동댕이치자 여종업원이 전화로 파출소에 신고했다. 잠시 뒤 젊은 의경 둘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말싸움이 멈췄고 여종업원이 의경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보아하니 두 분 다 나이 드실 만큼 드신 것 같은데, 별 거도 아닌 거 같고 젊은아들처럼 싸우고들 그랍니까. 식대 계산할 거 있으면 어서 계산 하시고 이제 그만들 하시죠.”

 

등산복이 분이 안 풀린다는 듯 침을 튀기며 의경들에게 소리쳤다.

“내 말 좀 들어보소. 저 아지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대머리라카지 않나, 도둑넘이라카지 않나, 저거 저거 국가원수 모독죄로 잡아가야 하는 거 아니요?”

젊은 의경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 저희들끼리만 들리게 말했다.

“국가기밀 누설죄네.”

 

싸움에 끼지 않았던 다른 등산복이 음식값이며 깨진 뚝배기값이며 계산하는 동안 아직도 씩씩거리는 등산복을 의경 둘이 팔짱을 끼고 억지로 식당 밖으로 끌고나갈 때 그가 쓰고 있던 등산모가 벗겨져 떨어지면서 드러난 하얀 대머리가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며 번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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