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4월 13, 2021
Home Blog Canadian Series 서수지, 워킹 헐러데이 비자로 와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서수지, 워킹 헐러데이 비자로 와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코리안 뉴스를 발행한지 16년이 되었지만 언제나, 인터뷰 기사를 쓸땐 조심하게 된다. 얼마나 바르게 보았는지는 짦은 시간에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리안 뉴스가 15주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그 동안을 돌이켜보면서 다짐한것이 있다. 앞으로 진정한 한인 사회의 인물을 찾아 나서겠다는 약속이다. 어느 신문이든 한인 사회에서 목소리가 큰 교민들만을 다루어 왔기 때문에 같은 인물이 여기 저기에서 나온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은 결국 국민 개인들의 희생으로 결실을 맺어왔다. 이 말은 어느 단체의 리더보다는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바른 삶의 양식을 가지고 가정을 이웃을 돌보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상을 받아야할 인물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이런 구석구석에 있는 밴쿠버 한인들의 아름다운 이민사를 다루고자한다. 첫번째 순서로 서수지씨이다. 서씨는 워킹 헐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와서 사스카츄안의 그래블버그 (Gravelbourg, Saskatchewan)라는 인구 1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비행학교를 다녔고 이후 밴쿠버로 와 비행학교에서 교관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 이제는 19명을 태울수 있는 비행기를 조정하는 파이롯트가 되었다.

인터뷰 하는 것을 어색해 하면서도 잘했다. 바로 이런 우리 밴쿠버 한인이 한국인의 위상을 그리고 캐나다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이지 않겠는가?

다음은 그녀와의 질문과 답이다.

<벤쿠버에 오게 된 경위는?>

< How did you come to Vancouver?> What brought you here?

제가 맨 처음에 캐나다에 온 동기는 조금 되게 특이한데요

How I came to Canada is rather quite unusual.

한국에서 대학교 졸업하고 이제 취업 준비 많이 하잖아요 대기업 가려고 취업 준비 많이 하고 그리고 자기소개서 하고 이런 식으로 준비를 하는데 저는 한 번도 이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거나 뭐 회사에 가고 싶다고 나 이런 꿈이 별로 없었어요.

After graduating university in Korea, you prepare yourself to go into private sectors preferably in large companies so you work on your resume and cover letters. However, I have never had the inclination to do that. That wasn’t my dream.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면 세계 여행을 가자 해서 한 5년에서 7년 정도의 배낭여행을 꿈을 꾸고 처음에 딱 도착한 곳이 이제 캐나다 였죠.

I had other things in mind. So, for me, after graduating, I dreamed of going on a long backpacking trip around the world for 5 – 7 years. And as a starting location I picked Canada first.

 그래서 캐나다엔 맨 처음에 워킹홀리데이로 오게 된 거고 그래서 워킹홀리데이로 왔다가 제가 여기 캐나다에서 파일럿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서 이제 머무르게 된 케이스에요.

I first came on a work-visa, not knowing what to expect. However, now knowing that I could become a pilot here, I decided to stay.

 저는 사스카츄완 에 있는 조그만 한 마을에 갔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이제 맨 처음에 레스토랑 식당에서 이제 종업원으로 일 하다가 여기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걸 고민하다가 이제 여기서 파일럿이 될 수 있다는 거를 이제 알게 된 거예요

When I first came to Canada, I worked in a restaurant from a small town in Saskatchewan. While working there I was thinking what I could do and that’s when I saw the opportunity to become a pilot.

 

그래서 근처에 있는 학교를 검색을 하고 그리고 이제 내가 여기서 진짜 파일럿이 되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런 것들 좀 고민을 하다가 조그마한 중고차를 사고 그리고 그때 비행 학교가 저희가 사는 곳에서 거의 한 2시간 200킬로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거든요.

I searched for a nearby pilot school but in the back of my mind, I constantly questioned myself if it would be possible for me to become a pilot here realistically. To follow through my goal, I invested in purchasing a small used vehicle as the school was about two-hour drive, around 200 kilometers, away from where I lived.

 그래서 맨 처음에는 한 1년 2년 정도 돈을 모아서 비행 그걸 할 수 있는 그 어느 정도의 재정적인 그 상황을 마련을 한 다음에 그 다음부터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날마다 가서 하기 시작했어요.

At first, I saved money for a year or two to ensure a I have enough finance to the flight training. And afterwards, I started flying once a week on my day off from work.

 

<비싼가요?>

<Is it expensive?>

비싸죠. 한 1억 정도 한국 돈으로 1억 정도 든다고 보시면 돼요. 이것저것 다 해 가지고.

It’s expensive. It costs about 100 million won in Korean won. Inclusive of everything.

근데 보통은 내가 갈 때마다 시간당으로 돈을 내는거라 보통 1시간 뒤에 250불 정도 돈을 내요.

You usually pay per hour so it costs around $250 an hour.

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 때 투자대비 (얻는 것이) 좀 적다는게 있긴 하지만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실 노력만 하면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꾸준히 가기는 쉽지 않은 길인 거 같아요.

 

How about return on investment?

Yes, now that I think about it, there’s a very little return on investment when you do a cost benefit analysis considering the amount of time and money you put into it. I really think if you put time and effort into something, you can achieve anything, but becoming a pilot is not for everyone.

 왜냐면 그만큼 시간도 돈도 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파일럿이라는 그런 하늘을 나는 거에 대한 그런 꿈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실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완주할 수 있는 그런 마라톤은 아닌 거 같아요.

Because it takes a lot of time, money, and effort. If you don’t have an unconditional attraction about flying, I don’t think it’s a marathon that you can complete easily.

 

<한국에서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나요?>

What was your dream in Korea?

 사실 파일럿이라는 꿈은 어렸을 때 가지고 있긴 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1학년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제가 어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그게 이원익의 비상이라는 책이에요.

Frankly, becoming a pilot has been my dream ever since I was young. When I was a going through rough years in high school, I read a book called ‘Bisang(Soar)’ written by Lee Won-ik.

 그분이 본인의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한국에서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파일럿이 된 그런 내용이었어요.

The story was about him overcoming his obstacles and going to an Air Force Academy in Korea and becoming a pilot.

그래서 그때 굉장히 감명을 많이 받고 나도 파일럿이 돼야겠다 해서 알아 봤는데 당시에는 한국에서는 눈이 시력이 자연 시력으로 1.5 이렇게 돼야만 파일럿이 될 수 있었거든요.

I still remember vividly that I was inspired by the story and that is when I thought of becoming a pilot. But at that time, one of the mandatory requirements for becoming a pilot in Korea was having near-perfect vision.

근데 저는 그 때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파일럿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때 이제 포기를 하고 이제 인생 그냥 move on 했죠.

But I was wearing glasses at the time, so there was no way I could be a pilot in Korea. So, I gave up and moved on.

 그리고 나서 20대 때 대학교 때는 외국에 나가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하는 그런 것들 굉장히 심취해 있어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And then when I was in my 20s, I was really into going abroad to experience different cultures, meet new people, learn different languages, and I decided to go backpacking alone.

 그래서 돈 모아서 이제 배낭여행 갔다 왔어요. 인도에도 혼자서 제가 3개월을 갔다 왔었거든요. 지금은 다들 어떻게 갔다왔냐고 그래요.

I saved up money and went on a backpacking trip. I went to India alone for three months. Everyone still asks me how I was able to do that alone.

 그래서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이제 뭘 하고 싶다 라는 것보다는 세상을 좀 더 보고 싶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이런 것들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고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 사진 찍고 글을 쓰고 하는 여행 작가가 되는데 꿈이었어요. 지금 그냥 여행 다니고 싶은데 대외적인 이유였기도 한 거 같아요.

By the time I graduate from the university, my desire was bigger towards to wanting to see the world more and experience more than getting a job. I wanted to become a writer who takes pictures and writes articles while traveling. Now that I think about it, a becoming a writer was just an excuse and justification to travel more around the world.

<전공이 뭐였나요?>

<What was your major back in university?>

영어영문학과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영어를 잘 하셨나봐요?>

<So, you were good at English>

아뇨 그건 아닌 것 같고. 다른 영어영문학과 나오신 분들 다 알 텐데, 워낙 외국에 나가고 싶은, 외국문화를 접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너무 강했어요. 사실 수능 공부할 때는 영어 지문 읽고 단어 외우고 이런 식의 공부만 하잖아요.

No, I don’t think so. I’m sure all of you who majored in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will know, but the desire to go abroad and experience foreign culture was strong so hence my degree. When you study for the college entrance exam, you read English texts and memorize words. That’s all you do.

 수능에 집중된 그런 공부하는데 저는 그 때 너무 외국 사람과 얘기하고 싶어서 외국 사람들 하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막 찾아다니고 혼자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거면서 영어로 말하고 그런 식으로 영어를 많이 연습을 했던 거 같아요.

I was focused on the college entrance exam. I really wanted to talk to foreigners, so I looked for opportunities to talk to them, muttered to myself, and practiced English a lot.

<평소 지니고 있는 신념? 철학?>

<Your beliefs? Philosophy?>

제가 20대 때 저한테 가장 크게 저한테 깨달음을 준 것이 있는데요. 20대 초반에 저도 사실 되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나라는 사람 인간 나는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많이 했는데 가장 저한테 큰 깨달음을 준 건 이제는 내 인생을 살아야 된다 라는 생각.

When I was in my 20s, there was something that made me realize the most. In my early 20s, I was giving a lot of thought about my career, and who I am. What gave me the biggest realization is that I have to live my life from now on.

지금까지 내가 18년 동안 부모의 밑에서 자라오면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환경의 영향을 받고 그렇게 지냈잖아요.

I’ve been raised by my parents for 18 years, influenced by them, and by the environment my parents put me in.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환경을 탓하고 있는 저를 발견을 했어요. 나는 희생자 행세를 하면서 나는 이 세상의 희생양이고 난 이 사회의 희생양이고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And then I found myself blaming everything on the environment. I was playing the role of victim and thought ‘I am the victim of this society, so I can’t do anything’.

20대 초반에는 나는 그런 세상을 되게 탓하기만 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세상에 되게 불만도 많았고 절망도 많이 했고 그러던 시기가 있었어요.

In my early 20s, I just blamed the world. So, there was a time when there were a lot of complaints and despair.

그 시기를 벗어나게 한 게 더 이상 너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너 자신을 희생양 취급 하지 말고 너의 인생이니까 네가 책임을 가지고 이거 네가 맘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약간 그런 책임의식을 갖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제 인생에 대해서.

I escaped from that toxic thoughts when I talked to myself ‘It’s your life that you no longer feel sorry for yourself and treat yourself as a victim. It’s your life. You can do whatever you want.’ That’s when I start to have that sense of responsibility about my life.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되 내가 내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나서 그때부터 조금 더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에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좋은 계기가 됐었던 것 같아요.

So after, I wanted to ‘do anything I wanted, but be responsible’ during the process. That’s when I became more of myself and who I want to be.  

<캐나다로 오게 된 경위?>

<How did you come to Canada?>

저는 맨 처음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년짜리 워크비자 받았어요. 그래서 맨 처음에 밴쿠버에 와서 호스텔에서 지내다가 이제 일자리를 찾지 시작을 했죠.

I first got a one-year working holiday visa from Canada. And I first came to Vancouver, stayed in a hostel, and was looking for a job.

제가 굉장히 모험가적인 성향이 있어서 검색을 하던 중에 한국 분이 하시는 되게 조그만 시골에 있는 모텔, 레스토랑, 바가 있는 조그만 사업을 시골에서 하고 계시는 거에요. 한국 가족이.

I tend to be very adventurous, so while I was searching, I found a small business ran by Korean family with a motel, restaurant, and bar in the countryside.

그래서 아니 이런 시골에 누가 살지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가지고 검색을 해 봤는데, 길이 애비뉴가 일곱 개 스트릿이 여섯 개 정도 되는 그런 진짜 조그만 시골에 왔어요.

I was a little curious and said ‘who would live in a countryside like this’, so I looked it up, and I came to a really small country with seven Avenues and six streets.

인구 1천명이 정도 되는 그런 시골. 그래서 뭐야 이런 곳에서 누가 살지? 내가 가서 이제 여기 시골 사람들 어떻게 사나 봐야겠다. 제가 그 job을 찾아 가지고 이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A very small countryside with a population of about 1,000 people. I thought who would live in this place? But at the same time, I was curious to go and see how the people in the countryside live. So, I found the job and the owner told me to come.

 그래서 그레이하운드 버스 타고 한 30시간에 걸쳐 가지고 사스카츄완에 있는 조그만 시골에 Gravelbourg 라는 마을에 일을 찾아서 가요.

I took the Greyhound and travelled about 30 hours to the small village in Saskatchewan called Gravelbourg.

 맨 처음에는 별로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제 거기에서 이제 시골에서 생활을 하면서 이제 사람들하고 정도 생기고 또 일도 재미있고 하다 보니까 이제 좀 더 오래 살아야 되겠다 라는 좀 이제 그런 계획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At first, I wasn’t planning on staying for long, but as I grew attached to the people there, and having fun working, I decided to stay longer.

 제가 어떤 곳에서 일 했냐면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 아침에 레스토랑 뭐 일단 열잖아요 그러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쫙 와요 그래서 와서 앉아 가지고 커피를 마시면서 한 1시간 2시간 동안 이제 수다를 떨다 가시는 거고. 사람들이 모든 가족의 다 대소사를 아는 그런 사랑방이었어요

I worked at a place like a community room. So, when the restaurant opens in the morning, all the seniors come and chat for about an hour or two while drinking coffee. It was a local community hall where everyone knew everything about everyone in town.
길거리 지나가면 어 안녕 이렇게 제 이름도 불러 주고 하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래서 처음에 캐나다에 와서 그 분들하고 이제 대화를 하면서 영어도 좀 많이 배우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우리 그 동네 flight club이 있었다는 거예요.

When I would walk around the neighborhood, everyone would say hi and recognize me. By communicating with the small-town folks, I learned to speak English. And more importantly, there was a flight club in my neighborhood.

 왜냐하면 그거 되게 부농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라 땅이 엄청 넓잖아요.

Because it’s a village where rich farmers live, and the farm is huge.

농부들이 그래서 거기에다가 이제 조그만 비행기를 사서 비행기로 이제 케미컬 뿌리는 그럼 crop dusting 하는 그런 농부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back yard를 런웨이로 만들어서 자기 비행기 가지고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crop dusting 하고 그런 것도 제가 알게 된 거예요.

Farmers used to buy small airplanes, spray the chemicals on their farm. So, they made the back yard as a runway and went around with their planes.

 그래서 예전에는 그 조그만 동네 flight club에 비행기가 10, 11대가 서 있었던 거야 지금은 많이 없지만. 그래서 “아니? 할아버지가 파일럿을 할 수 있어 여기서는?”

There used to be 10 or 11 planes in that small town’s Flight Club, which is a lot considering how small the town is. Back then, I thought, “What? Even seniors can be pilots?”

제 생각으로는 무조건 파일럿이 되려면 눈 시력도 좋고 막 체력도 엄청 좋고 그래야 되는 건데. 저 할아버지는 60대 인데?? 그래서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검색을 하기 시작한거죠.

Initially, coming from Korea where I thought you had to have vision and stamina to become a pilot. But I thought that man is in his 60s!’ So, I thought ‘if they could do it, I could do it too.’ so I started searching to become a pilot.

 그래서 그렇게 사스카츄완의 Gravelbourg 라는 시골마을이 저한테는 캐나다 마음의 고향 같은 그런 곳이거든요. 아직도 거기에서 그때 사귀었던 친구들 하고 연락도 하고 다들 잘 지내는지 얘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는데 어째 거기 이제 레스토랑에서 한 4년 반 정도 일 하면서 돈을 모으고 그리고 이제 비행교육을 받고 제가 파일럿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그런 고마운 곳이에요.

That is why the rural village of Gravelburg in Saskatchewan is like my home in Canada. I still keep in touch with my friends I met there and talk to them about how they were doing. I worked at the restaurant for about four and a half years, saved money, had flight training, and laid the foundation for me to become a pilot.

 그리고 사장님께서 저를 또 좋게 보시고 이제 영주권도 지원을 해주셔 가지고 제가 이제 비행교육 마치고 영주권도 받고 이제 돈도 어느정도 세이브 되었을 때 쯤에는 이제 밴쿠버로 상황이 돼서 2017년도에 밴쿠버로 이사를 왔고 여기서 좀더 이제 추가로 교육을 받으면서 큰물에서 내가 파일럿이 되리라 하는 야망을 가지고서 밴쿠버 입성을 하게 된 거죠. 그 전에는 되게 시골 마을 촌뜨기였어요.

And the owner of the restaurant liked me and supported me with permanent residency. So thankfully, I received permanent residency and saved some money. I moved to Vancouver in 2017 with the big ambition of becoming a pilot. Before that, I was a very rural country girl.

 밴쿠버에 와서 추가로 더 받아야 되는 비행기 교육을 받으면서 이제 밴쿠버 공항에 한 Pacific costal airline 이라고 하는 에어라인에서 ramp agent로 일을 했어요.

I worked as a ramp agent on an airline called Pacific Costal Airlines at Vancouver Airport, doing additional flight training in Vancouver.

 그래서 그 손님들이 짐 check in하면 짐 날랐다가 비행기 다 싣고 그리고 비행기 말살하고 화장실 치우고, 그렇게 하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옆에 있는 조그만 회사에서 저한테 우리 회사 파일럿으로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듣고 교육을 시작했어요.

When the guests checked in their luggage, I carried the luggage, cleaned the bathroom. And then, a small company next to the airport said they would give me a job as a pilot for the company, so I started training.

근데 이게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어떤 비행기에 파일럿이 되려면 그 비행기 안에서 의 교육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 비행 시험을 봐야 되는데 그 비행 교육이 계속 늦어지는 거야 일주일 있다가 이주일이 됐다가 한 달이 됐다고 두 달이 됐다가 세 달이 됐다가.

If you want to be a pilot on an airplane, you need to be educated on that plane. Now I must take the flight test, but for some reason, the flight training continued to be delayed. A week, two weeks, a month, two months, three months go by.

나는 밴쿠버에서 돈도 없고 그럴 떄인데. 그래서 그때 너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외지에, 돈도 세이브 된 게 점점 다 떨어져나가지, 근데 직장에서 연락은 안오지, 그렇다고 또 일을 다시 새로운 걸 구할 수도 있는 상황도 아니지, 내일 전화해도 모르는데.

That’s when I started to run out of money. I was so stressed. I waited and waited for a call from the company but never did. They wouldn’t give me the clear answer.

 그렇게 약간 피말리는 상황을 한 3, 4개월 지내다가 지금의 남자친구 테런스가 그러면 너 비행교관 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해서 그때  비행교관 교육을 받기 시작 했고요. 그래서 비행교관이 돼서 재작년부터 비행교관으로 1년 반정도 일을 하다가 올해 2020년 1월 달에 밴쿠버국제공항 에 있는 화물수송기 회사에서 취직이 됐어요. 지금은 화물수송기 회사에서 First Officer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After three or four months of being in a bit of a fickle, my boyfriend Terrence suggested me to become a flight instructor, so I started training as a flight instructor. So, I became a flight instructor and worked as a flight instructor for about a year and a half since last year, and I most recently, got a job at a cargo plane company at Vancouver International Airport in January 2020. I am currently working as a first officer at the cargo plane company.

<수지에게 캐나다는?>

<What does Canada mean to Suji?>

 먼저 얘기하고 싶은데 첫 번째는 이게 캐나다여서가 아니고 한국 사람으로서 외국에 나와서 산다는 거 자체가 한국 사람이 한국사회의 살면 이렇게 해야 되고 이렇게 행동해야 돼 이 나이쯤에 이걸 해야 되고 뭔가 하는 그런 사회적인 기대나 약간의 제한들이 있잖아요.

First thing I’d like to mention is that when living in Korea, there are certain social expectations and limitations as you grow older.

 그런 것에서 벗어나 땅 이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는 내가 정말 원하는 사람이 나의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곳인 거 같아요.

Canada was a country where I was able to express my true Korean identity and become who I really want to be and where I realized my true self.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제 개인적인 생각은 굉장히 관대하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And secondly, I personally think Canada is more generous.

그게 한국 사회에서는 제가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인간의 존엄성 아니면 인간의 존중이 물질적인 잣대에서 비교되고 그거에 대해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고 하는 게 더 많았다고 치면 여기서는 그런 것 보다는 그냥 인간을 인간 자체로서 훨씬 더 존중하고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람과 커넥션 따라서 누구든지 다 정리 좀 하고 적용할 수 있는 그런 나라인 거 같고요.

In Korean society, let’s say human dignity, and respect were graded by materialistic things but it seems that here in Canada, human relationships are more important than materials, and therefore, anyone can truly appreciate that.

 물론 캐나다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회 문제들도 많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그런 것들이 매나다가 한국보다는 관대하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한국에 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서바이벌 모드 어떤 거 같아요 뭐든지 내가 이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내가 도태되는 그런 사회.

Of course, Canada has many other social problems, but I think Canada is more generous than Korea, and when I lived in Korea, everyone was in a survival mode. The kind of society in which if I don’t win, I fall behind.

 그래서 뭐 둘 다 너무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모두들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그런 건가 그런 세팅 이었다면 여기서는 누구에게든지 기본적인 소셜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밟으면서 내가 올라가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열심히 하면 내가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거 얻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더 강해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대하는 게 경쟁심에서 한 단계 좀 더 재미나게 사람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인 거 같아요.

Here, there is a system here that guarantees basic human rights for everyone, so I think, people can receive recognition if one works hard. It prevents people from thinking I need to climb that ladder by stepping on others. What I am saying is that it’s an environment where people can go a step further from competition and have fun communicating with people.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죠?>

<Your parents must be proud of you, right?>

네. 그래요. 한국에 저희 부모님들은 제가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좀 특이한 딸이였기 때문에 캐나다 가서 맨 처음 비행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을 하셨지만 그냥 저를 믿어 주셨거든요.

Yes. They are. My parents were worried about me when I said I was going to become a pilot in Canada, but they trusted me with my decision.

 그리고 지금은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시고 부모님은 저를 되게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되게 혼자서 잘 해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우리가 한국 사람이 캐나다에와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이곳에 와서 사실 시작하는 거잖아요 내가 어떤 지금 어떠한 상황이 건.

And now they’re very proud of me, and I think my parents think I’m bold. ‘You did a great job by yourself’. For any reason, to their eyes, I came to Canada seeking for a better life, and that’s what makes them proud of me.

 저는 2012년도 처음에 왔을 때는 그냥 단순한 외국인 노동자였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서 캐나다에서는 나에게 내가 무언가를 원하는 거를 될 수 있다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원하는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라는 그런 기회를 준 땅이고 저에게 그리고 전 그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을 하였고요.

I was just a foreign worker when I first came to Canada in 2012, but over time, Canada gave me the opportunity to be what I wanted, to be who I wanted, to be able to do what I wanted, to get the status I wanted, and I took the opportunity, and I made consistent effort to have achieve that opportunity.

 지금은 영주권자 곧 시민권자를 바라보는 사람이고, 그리고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만약에 저처럼 지금 학생비자로 유학생으로 계시거나 아니면 워킹홀리데이로 오시거나 아니면 힘들게 영주권을 진행을 하고 있는 워크퍼밋을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저를 보고 좀 희망을 가지고 원하면 힘들지만 그 길이 정말 길고 힘들고 지치지만 원하면 할 수 있다라는 그런 희망을 잃지 않고 생활 하셨으면 좋겠고요.

Now I’m a permanent resident, and soon to be a citizen, and I have a job as a pilot. If you’re studying abroad with a student visa, or if you’re working hard on a working holiday, or if you’re working on a permanent residency program, I want you people to look at me and be hopeful. It’s a long and tiring journey, but I really wish people don’t lose hope and that you can do it if you want it.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체에 캐나다에 있는 한국 분들한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제가 캐나다에 와서 그리고 제 주변에 사람한테도 항상 들은 말이 ‘한국 사람 믿지 말라’ 라는 말이 만연하게 퍼져 있었어요. 근데 우리가 여기 와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같은 입맛을 가지고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 길에서 더 좋은 영향을 끼치고 더 깨끗하게 윤리 의식과 도덕성을 갖추고서 비즈니스를 하고 사람을 대하면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 믿지 말라는 그런 부정적인 얘기 더 이상 나오지 않지 않을까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들고요.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보다는 좀 더 전체를 위한 마음을 가지고서 그렇게 모든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nd another thing I want to say to Koreans in Canada is that when I come to Canada and people around me always say, “Don’t trust Koreans.” Unfortunately, this is a widespread saying. But as outsiders living in here, speaking the same language, eating the same food, should have a better influence on each other. Have good sense of ethics and morality. This way, I don’t think there will ever be a such saying. I hope that everyone be more positive and look for the communal good rather than good for oneself.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 Advertisment -

Most Popular

서수지, 워킹 헐러데이 비자로 와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코리안 뉴스를 발행한지 16년이 되었지만 언제나, 인터뷰 기사를 쓸땐 조심하게 된다. 얼마나 바르게 보았는지는 짦은 시간에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리안 뉴스가 15주년을 지나는...

Dalai Lama to headline Seoul International Buddhism Expo

  This year’s online Expo will showcase a global following born out of the traditions, beliefs and spiritual practices of Buddhism. The Dalai Lama will headline...

쿠, 한국인 마스코트

우리의 쿠, 3·6·9 놀이 홀로 연습하다 쿠, 손님을 초대하다 너무해 너는 누구니? 쿠의 겨울은 따뜻합니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캐나다 작가 이연수의...

Vancouver Korean Kendo Club

Head, head, head! Even before entering the dojo, I was able to know where I was practicing immediately after hearing the Korean language. I decided...

Recent Comments

ko_KRKor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