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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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교민문학의 산실, 제8기 한국문예창작대학을 개강하는 이원배 캐나다 한국문협 이사장

장소: 코리안뉴스 사무실

시간: 2015년 4월 15일

대담자: 이덕일 기자, 이원배 이사장

 

이덕일: 안녕하십니까? 이 이사장님. 캐나다 한국문협이 금년으로 창립 8주년을 맞이하신다지요? 2009년도에 한국문인협회 캐나다지부 창립기념식을 겸한 “제1회 한마음문학제” 행사를 개최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이 되어 가는군요.

이원배: 그때 이덕일 기자도 창립발기위원으로 참석하셨지요? 나중에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그만두실 때까지 한 1년동안 문협발전을 위해 협조해 주신 것 지금도 감사드립니다.

이덕일: 당시 밴쿠버에 두 문인단체가 있었지요. 신설된 한국문협 캐나다 지부를 합하면 세개 단체였는데 모두 저희 신문 독자분들이라서 어느 한 곳에 적을 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원배: 언론사라면 당연히 중립을 지켜야지요.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우리 회원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 공간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덕일: 그런데 최근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가 개설되

어 활동하고 있는데 밴쿠버에 한국문협 지부가 두 개인 셈입니까?

이원배: 교민 여려분들도 많이 혼돈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는 당시 한국문협의 명예이사장으로 계시던 S씨의 권유로 정식 절차를 밟아 동 문협의 캐나다 지부를 개설하게 되었지요. 당시 김년균 한국문협 이사장을 비롯, 홍성훈, 이길원, 정호승, 김우종 등 유명 한국문인들이 축시도 보내주시고 해서 훌륭한 행사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기 한국문협 이사장 선거를 앞두고내분을 벌이는 바람에 저희가 인준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위 문협 내에서 패가름이 시작되었고, 한국의 문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교민문학을 발전시키려는 저의 의도가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0년 저희 단체는 캐나다 한국문인협회로 명칭을 바꾸고 BC 주정부에 사회단체 등록
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덕일: 한국문인협회라는 이름을 계속 쓰실 수 있습니까?

이원배: 그렇지 않아도 여러 곳에 사용가능여부를 알아보았습니다. 결론은 ‘한국문인’이라는 명칭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며, 현재 ‘미동부 한국문인협회, 미주 한국문인협회’가 40여년 이상을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동 문협 관계자들을 통해 인지하였습니다. ‘쵸코파이’ 논쟁이 생각나십니까? 오리온 쵸코파이 회사가 롯데 쵸코파이 회사를 상대로 낸 상호명 쵸코파이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패소하였지요. 쵸코파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C 주정부에 등록된 영문명칭(Korean Writers’ Association of Canada)은 우리 문협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표

등록 같은 것이지요.

이덕일: 이제야 이해가 가는 군요. 한국과의 연결고리가 끊겨서 아쉬운 점이 없습니까?

이원배: 우리가 독자적으로 활동하니 오히려 득이 더 많았습니다. 우선 한국문협 지부는 엄밀히 말해서 한국단체의 지부이니만큼 본부 단체의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지부장 임명도 본부단체의 인준을 받아야 하며, 지부장은 한국문협의 정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회비도 지부회비와 본부회비를 따로 내야 합니다. 저희는 가입비 없이 8년째 $50의 연회비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문협이 캐나다 단체이고 물론 충분하지는 않아서 제가 매년 제 호주머니 돈을 털어서 문협행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려운 교민생활을 감안해서 가급적이면 회비를 올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국과의 연결고리에 대한 질문을 하셨지요? 제가 엉뚱한 대답을 했네요.

한국문협만이 유일한 한국의 문인단체가 아닙니다. 크고 작은 단체를 합하면 한국에 약 300여개의 문인단체가 있습니다. 한국문협의 지부라고 하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캐나다의 독립된 한국문인단체라고 하면 관심을 가져주는 데가 많습니다. 이미 동 단체들에서 발간하는 문학지에 여러차례 우리 문협에 대한 특집이 나갔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산문’이라는 문학잡지에서 2015년 신년호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특집과 함께 회원들의 수필을 기고해 주었지요. 또한 여러 한국문학 단체에서 저희와 문학교류를 하려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잠시 지부로 있을 때 본부 문협에서는 회원 증가 라던지, 회비 납부 라던지 등의 지시 또는 부탁만 했었지 지부를 위해 도움을 준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지부의 이름을 버리기 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덕일: 문예창작대학에 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셨지요?

이원배: 좀 예민한 문제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중학교때는 현재 한국의 중견문인인 정호승 시인과 함께 문예반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시 정 시인은 국문학과, 저는 경제학과로 가면서 길이 엇갈렸습니다만 대학에서나 직장, 즉 다니던 은행에서나 꾸준히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은행에서 사보편집을 7년간 담당하면서 문장력을 키웠지요. 밴쿠버에 오기까지 다양한 문학활동을 하였고, 다양한 장르, 즉 시, 수필,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등의 강좌를 수강했습니다. 금융인을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는 금융인문화제 문학작품 공모전에서 두차례나 수필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1996년에는 월간 문학공간에서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문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지요.

 밴쿠버에서 2005년 모 문협의 신춘문예에 수필로 당선되면서 교민문학인들과 접하게 되었는데 한국처럼 다양한 행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서 한국과 문학교류를 하기 위해 한국문협 지부 창설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은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밴쿠버 문인들이 아무도 참가하지 않으려고 하자 제가 제1기 문학교실을 개강하여 수강생 7명으로 문협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 강좌만 했었는데 제3기부터 수필을 추가하였고, 제6기부터는 시낭송을 추가하였습니다. 금년에 시행되는 제8기부터는 영화, 방송, 에니메이션 등 메스미디어 발달의 추세에 맞추어 시나리오 부분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덕일: 시나리오는 문학장르로 보기 곤란하지 않을까요? 시나리오 창작 경험이 있습니까?

이원배: 제가 한국에서 국문학과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를 위해 문학강좌는 장르를 불문하고 다 들었습니다. 희곡은 고 차범석 작가의 희곡교실을 수강했고, 시나리오는 충무로에 있는 영상작가 진흥원에서 기초반과 중급반을 6개월 간 수강했습니다. 은행일이 바빠져서 아쉽게도 고급반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게 20년 전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함께 공부한 동급생들 중 다수가 영화 및 방송드라마계로 진출하였더군요. 제가 40대 중반으로 나이가 제일 많아 반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강과정에서 시나리오를 두어 편 창작했었는데, 공모전에는 출품하지 못했습니다. 담임교수님 말이 제 작품은 문학성은 뛰어난데 영화를 만들 경우 재미는 없기 때문에 공모전에 당선될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사실 아카데미 작품상은 영화의 재미보다 사회성, 시사성을 통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작품이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흥행에는 실패하지요.

요즘도 문학으로서의 시나리오를 요구하는 곳은 극적 재미보다 독자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요구하지만 시나리오는 그 자체만으로는 독자적으로 설 수 없는 장르입니다. 영상화, 즉 영화나 방송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
평가받을 수 있지요.

이덕일: 경제학 박사에 은행원 출신이 문학강좌를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이원배: 제가 대학에 10년간 겸임교수로 출강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진땀을 흘렸습니다. 1시간이 1년 같이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차츰 강의를 해 나가면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공부도 했습니다. 요는 경제학이던 국문학이던 학생들이 알아듣게 강의할 수 있는 기법이 중요합니다. 저는 주로 무역학을 강의하였는데, 하바드나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 나온 교수보다 제 강의가 더 인기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이지요. 문예창작대학 강의를 듣는 분들은 문학을 전공하려는 분들이 아닙니다. 생전 문장 한 줄 써보지 않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머리에서, 가슴에서 한 줄의 문장을 끄집어 내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이덕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문학강좌도 있다는데 $60의 수강료를 받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원배: 첫째, 교민들이 버스나 스카이트레인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장소는 댓가를 지불하고 빌려야 합니다. 카메론 커뮤니티 센터는 로이드 전철역 주변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교민들이 많이 사시는 코퀴틀람과 버나비의 경계선에 위치하여 편리합니다.

둘째, 저희는 200페이지에 달하는 교재와 함께 시집 등을 제공합니다. 교재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재를 만드는 이유는 수강생들이 수료후에도 독학으로 복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수료생들을 위한 수료증서를 만들어 드리고, 창작발표회를 가지는데 비용이 들어 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강료를 지불하고서라도 강좌를 신청하는 분들의 자세와 무료로 강의를 듣는 분들의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료의 경우 바쁘면 좀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유료의 경우는 자기가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걸맞는 효과를 거두려는 각오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비용으로 따지면 항상 적자이지만 수강생들이 작품을 창작하고 또한 한카문학상을 비롯한 각종 현상응모에 당선되었을 때 느끼는 보람이 비용을 넘어서기 때문에 문예창작대학강좌를 해마다 개강하는 것입니다.

이덕일: 힘들지만 독자에게 바른 정보와 지식의 전달을 추구하는 언론사와 보람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향후 문예창작대학 수료생들에 대한 기대와 문협 발전방향에 대해 한말씀 해 주시죠.

이원배: 문예창작대학을 저는 ‘밴쿠버 문학사관학교’로 별칭합니다. 교민문학을 이끌어 갈 분들이 해마다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밴쿠버의 역사를 기록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새로울 것입니다. 금년 10월 제가 한국에 가서 현재 년 2회 발간되고 있는 ‘한카문학’지를 한국에서 문학지로 발간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또한 캐나다 한국문협의 서울지부, 또는 한국지부를 설립하여 우리 회원이었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분들이 지속적으로 문협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10년, 20년 후의 문협을 봅니다. 우리 회원들의 연령구조는 다양하지만 점차 40대-50대가 늘고 있어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 또한 차세대 문학교육에 집중하여 명실공히 문예창작대학이 밴쿠버 교민문학의 산실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덕일: 장시간 감사합니다. 캐나다 한국문협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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